[기자수첩] 보안과 언론매체의 존재 이유 ‘잔소리’ 2019.02.11

나이가 드니 느는 건 잔소리뿐이라...
아기 게가 옆으로 걸었더니, 엄마 게가 나무라더랍니다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연휴가 되면 종종 찾는 집안 어르신 댁이 있다. 책을 많이 수집하시는 분이라 책꽂이만 훑어도 재미있어 나름 방문이 즐거운 곳이다. 그 분은 한 메이저 일간지가 내는 잡지를 20년 가까이 구독하셨는데, 얼마 전 끊으셨다고 하셨다. 한 10년을 보다 보니 똑같은 소리만 계속 나오더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 후 10년 동안 구독을 끊기 전까지는 얼마 읽지도 않으셨단다. 월간지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한 입장에서 허를 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미지 = iclickart]


매체들이 날마다 새로운 소식과 통찰을 제공한다는 건 허상이다. 한 분야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은 결국 큰 맥락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고, 그 사건이 주는 교훈 역시 과거 현인들 입을 통해 여러 번 나왔던 것들을 반복하는 것에 그친다. 게다가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도 꽤나 금방 익숙해져, 헌 것이 생산되는 속도는 아찔할 정도다. 이런 요인들이 만나니 신문지상에서만큼은 해 아래 새 것이 정말로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 새 것에 목을 매 사건을 만들고, 부풀리고, 왜곡하니 매체에 대한 불신의 풍조가 생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린 매체의 진정한 역할은 보안의 그것과 동일한데, 바로 ‘잔소리’다. 등장인물과 연도와 같은 세부사항들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수법이나 목적에 있어서 대동소이한 사건들과, 그로 인한 비슷한 결론, 어디서 읽어본 듯한 통찰이 재료인데, 이걸 가지고 주기적으로 새 걸 만들어낸다면 솔직히 사기 아닌가. 모든 걸 막아낸다는 보안 솔루션이나, 언제나 새로운 소식으로 가득하다는 매체나, 동급이다.

얼마 전 아이에게 엄마 게와 아기 게 이야기를 읽어주다가 숨겨져 있던 교훈을 발견했다. 옆으로 걷는 아기 게를 보고 똑바로 걸으라고 혼내는 엄마 게에게, 엄마도 옆으로 걸으면서 왜 나보고만 뭐라고 하느냐는 아기 게의 반박이 주된 내용인 이 이야기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의 확장판 정도로 보급됐었다.

그런데 부모로서 다시 읽어보니, “훈수 두는 자에게는 스스로의 실행능력과 상관없는 ‘정확한 눈’이 허락되어 있다”는 교훈도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잔소리를 하는 자 스스로가 실행을 잘 한다면 교훈의 설득력이 커지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가 옆으로 걷거나 똑바로 걷는 건 구분할 수 있다는 거다. 친구들 장기 둘 때 옆에서 훈수 두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초고수가 되는 것이 이런 이치다.

‘잔소리’나 ‘훈수.’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까워하는 것이다. 잔소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싸우고 삐진다. 장기판에서 훈수 두다가 큰 소리로 다투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봤고,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옆 친구의 잔소리에 문을 박차고 나가던 학생들도 심심찮게 봤다. 기자만 해도 자동차 내비게이션 안내 목소리가 잔소리 같아 음소거를 하고 다닌다.

그럼에도 잔소리에는 힘이 있다. 끔찍하게 듣기 싫어서건, 어느 날 문득 그 잔소리가 맞게 느껴져서건,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즉각 반응이 나타나는 예는 드물다. 그러나 반복이란 게 워낙 무서운 것인지라, 언젠가, 느리게라도 잔소리는 작용을 시작한다. 기자도 평소 신발 정리를 하지 않아 잔소리를 듣고 싸우기도 하지만, 아내가 몸이 아프거나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땐 알아서 치우고 청소하고 덤으로 바닥도 걸레질한다. 온 몸으로 거부해도 박힌다는 것이 잔소리의 힘이다. 어머님을 잃고서야 비로소 지켜지던 잔소리도 있었으니, 그 효력은 APT 공격처럼 알게 모르게 길다.

잔소리가 강력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반복 학습 효과다. 그런데 누군가 같은 말을 같은 상대에게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 예외가 없지 않겠지만 - 기본적으로 사랑과 애정에 그 관계가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뭐, 사랑의 매, 이런 거까지 가지 않더라도, 애초에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는 꾸준히 말을 걸지도 않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자식들 가르쳐보니, 어지간한 상황은 대부분 계속해서 알려줘야 겨우 이해하곤 하더라. 한 번 말해서 척 알아듣고 다음 행동까지 고쳐진다면, 그게 바로 신동이었다. 어릴 때 신동 소리 못 들어본 기자 같은 사람들은 잔소리를 듣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부모가 되어서야 이해했다.

또 잔소리가 강력할 수밖에 없는 건, 대부분 맞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틀린 내용을 자꾸 주입하려는 의도의 잔소리는(그게 잔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튕겨내기가 쉽다. 거짓이기에 귀는 내줄지 몰라도 마음에서 오랫동안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가 간단하다. 그러나 진저리를 쳐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면, 그 소리가 일리 있고 옳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진실의 힘이 이렇게나 강력하다.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데도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결국에는 변화까지 이끌어내니 말이다. 난 모든 매체가 그런 잔소리를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내일 혹은 다음 달 누가 얼마나 내가 쓰는 기사를 읽고 클릭해주든, 결국 이 시대와 미래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하는 옳은 잔소리의 씨앗이 저 먼 훗날 맺을 바른 변화의 열매들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매체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안타깝게도, 같은 잔소리를 거의 모든 사건에서 똑같이 해야 하는 보안 담당자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한두 번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고, 신선한 접근법을 선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올바른 인터넷 생활 습관’이라는 기본기를 계속해서 말해주고, 기억나게 해주고, 깨닫게 해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잔소리이기에 금방 효과를 발휘하지 않으며, 보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직원이나 보안이 중요하다고 말로만 하는 임원이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도 잔소리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내 말이 당장 잘 먹히는 게 아니라, 언젠가 있을 사회적 인식 자체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보안의 꿈은 좀 더 거대한 것에 방점이 찍혀 있어야 오늘의 할 일 - 그렇다, 잔소리 - 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좋은 것은 의외로 거친 포장지에 싸여 있을 때가 많다. 잔소리 속에 숨어있는 사랑과 진실이 그렇다. 보안은 포장으로 승부 볼 수가 없는 분야다. 더 사랑하고, 더 맞는 소리를 함으로써 내실을 다져야 한다. 다행인 건 사람들도 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라도 보안이 중요하다고 하고, 가끔이라도 보안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잔소리로 안내하는 곳은 적어도 지옥보다는 안전한 세상일 것이다.
[문가용 기자(globoan@bo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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